S 이야기 · 전권 통독

크라우니 — 끝까지 친구로

대단하지만, 친구 같은 · 전체 9장을 한 번에
이야기 · CHAPTER 01

지으심 — 친구가 갖고 싶었던 분

이 책은 비유입니다.
여기 나오는 '크라우니'는, 모든 것을 지었고 지금도 당신을 사랑하는 한 분을 가리킵니다. 세 분이 아니라 한 분입니다. 어떤 때는 멀리서 세상을 지으시고, 어떤 때는 직접 곁에 오시고, 어떤 때는 당신 안에 머무십니다 — 그래도 늘 같은 한 분, 크라우니입니다.
이야기 속 사람들의 이름은 모두 새로 지었습니다. 이 이야기가 어느 한 나라, 어느 한 종교의 것이 아니라, 온 세상 누구에게나 건네는 '사랑 이야기'이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편하게, 친구의 옛이야기를 듣듯이 읽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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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전, 아무것도 없던 때가 있었습니다.

빛도, 바다도, 저녁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텅 빈 곳에 한 분이 계셨습니다. 이름은 크라우니.

크라우니가 얼마나 대단한 분인지, 한 번에 다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나중에 밤하늘을 올려다볼 일이 있거든, 그 많은 별을 한번 세어 보세요. 다 못 셀 겁니다. 그 별을 전부 지은 분이 크라우니입니다.

그런데 신기한 게 있습니다. 그렇게 대단한 분이, 외로웠습니다.

가진 게 없어서가 아닙니다. 크라우니에게는 모든 것이 있었으니까요. 다만 사랑이라는 건, 혼자 두면 자꾸 넘칩니다. 누군가에게 흘려보내고 싶어집니다. 크라우니의 사랑이 꼭 그랬습니다. 너무 가득 차서, 나눌 사람이 갖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짓기 시작했습니다.

먼저 빛을 켰습니다. 어둠뿐이던 곳에 아침이 들어왔습니다. 그다음 하늘을 펴고, 바다를 부었습니다. 땅을 돋우고 풀을 심었습니다. 헤엄치는 것, 기어가는 것, 날아가는 것 — 크라우니는 하나하나 지으며 자꾸 웃었습니다. "좋다. 정말 좋다." 무언가를 만들고 기뻐할 줄 아는 분, 그게 크라우니였습니다.

하지만 별도, 바다도, 짐승도, 크라우니의 사랑을 다 받기엔 부족했습니다. 사랑은 마주 볼 친구를 원하니까요.

그래서 마지막에, 크라우니는 가장 아끼는 것을 지었습니다.

사람이었습니다.

첫 사람의 이름은 단, 그다음은 리아. 크라우니는 둘을 지을 때만큼은 멀찍이서 만들지 않았습니다. 흙을 직접 손에 쥐고, 가까이 다가가, 숨을 불어넣었습니다. 별을 지을 때보다 더 조심스럽게, 더 정답게.

단과 리아가 처음 눈을 떴을 때, 가장 먼저 본 것은 크라우니의 얼굴이었습니다. 무서운 얼굴이 아니었습니다. 오래 기다린 친구를 드디어 만난, 그런 환한 얼굴이었습니다.

그날부터 셋은 친구가 되었습니다.

크라우니는 단과 리아에게 세상을 구경시켜 주었습니다. 어느 열매가 단지, 어느 골짜기에 바람이 시원한지, 밤에는 어느 별이 제일 먼저 뜨는지 — 마치 자기 집에 친구를 초대한 사람처럼, 신이 나서 이것저것 보여 주었습니다.

저녁이 되면 셋은 함께 걸었습니다. 해가 뉘엿뉘엿 질 때, 바람이 선선해질 때, 크라우니는 단과 리아의 이름을 부르며 같이 걷자고 했습니다. 별을 지은 그 큰 분이, 두 친구와 나란히 걸으며 그날 있었던 일을 도란도란 들었습니다.

이것이 크라우니가 가장 좋아하던 시간이었습니다. 대단한 일을 하던 시간이 아니라, 친구와 저녁을 걷던 시간.

기억해 두세요. 이 이야기의 처음은 거대한 우주가 아닙니다.

저녁에, 친구와 나란히 걷고 싶었던 한 분의 마음입니다.


이야기 · CHAPTER 02

멀어짐 — 처음으로 숨은 날

한동안 모든 게 좋았습니다.

단과 리아는 크라우니와 저녁을 걸었고, 세상은 매일 새것 같았습니다. 둘은 부족한 게 없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부족한 게 없다는 걸 몰랐습니다. 가진 게 너무 당연해지면, 사람은 가끔 그 당연함을 의심하기 시작하니까요.

어느 날, 낮은 목소리 하나가 단과 리아의 곁을 스쳤습니다.

그 목소리는 다정한 척했습니다. 하지만 하는 말은 묘했습니다.

"크라우니가 정말 너희를 위한다고 생각해? 좋은 걸 다 주는 것 같지? 아니야. 제일 좋은 건 숨겨 뒀어. 너희가 크라우니 없이도 잘 살까 봐, 일부러 안 준 거야. 너희가 직접 가져. 그래야 너희가 주인이 되지."

이상한 일입니다. 크라우니는 한 번도 무언가를 아낀 적이 없었는데, 그 한마디에 단과 리아의 마음이 흔들렸습니다.

'정말 그럴까? 우리가 받기만 하는 건, 아직 진짜 어른이 아니라서일까? 크라우니 없이, 우리 힘으로 주인이 되어 보면 어떨까?'

그래서 둘은, 손을 뻗었습니다. 받기를 기다리는 대신, 스스로 움켜쥐기로 했습니다. 작은 일 같았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처음 보는 감정이 마음에 들어왔습니다.

부끄러움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부끄러움은 곧 무서움이 되었습니다.

그날 저녁, 늘 그렇듯 바람이 선선해지고 해가 기울 때, 크라우니가 왔습니다. 여느 때처럼 같이 걸으려고. 여느 때처럼 두 친구의 이름을 부르려고.

그런데 단과 리아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둘은 나무 뒤에 숨어 있었습니다.

세상이 생긴 이래 처음 있는 일이었습니다. 누군가가 크라우니를 피해 숨은 것은.

여기서 잘 보아야 합니다. 크라우니는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분입니다. 화를 내며 천둥을 칠 수도, 숨은 둘을 단번에 끌어낼 수도 있었습니다. 잘못한 건 단과 리아였으니까요.

그런데 크라우니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크라우니는 나무들 사이를 천천히 걸으며, 조용히 불렀습니다.

"어디 있니?"

그 목소리에는 분노가 없었습니다. 있는 건 다른 것이었습니다. 친구가 갑자기 사라졌을 때의, 그 막막하고 아픈 마음. 보고 싶어서, 걱정돼서, 다시 만나고 싶어서 부르는 목소리.

"어디 있니?"

크라우니는 그날, 단과 리아가 잘못했다는 걸 알면서도 가장 먼저 한 일이 '찾는 것'이었습니다. 혼내는 게 아니라, 찾아오는 것.

이날 세상에 '거리'라는 게 생겼습니다. 크라우니와 사람 사이의, 슬픈 간격 말입니다. 단과 리아는 결국 그 정든 동산을 떠나야 했고, 삶은 전보다 고단해졌습니다. 이건 슬픈 장면입니다. 숨기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이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 주세요.

크라우니는 그날 "어디 있니?" 하고 물은 뒤로, 단 한 번도 그 질문을 멈춘 적이 없습니다.

이 책의 나머지는 전부, 그 한마디를 들고 사람을 찾아오는 한 분의 이야기입니다.

벌어진 거리를, 크라우니가 어떻게 끝까지 메우려 했는지의 이야기입니다.


이야기 · CHAPTER 03

그래도 곁에 — 포기하지 않는 친구

세월이 흘렀습니다.

단과 리아에게 아이가 생기고, 그 아이에게 또 아이가 생기고, 사람은 점점 많아졌습니다. 그런데 사람이 많아질수록, 크라우니를 기억하는 사람은 적어졌습니다.

이상하지요. 받은 게 많을수록 고마운 줄 알아야 할 텐데, 사람들은 오히려 잊었습니다. 서로 빼앗고, 속이고, 더 가지려고 다투었습니다. 그 낮은 목소리 — "네가 주인이 돼" 하던 그 속삭임이, 사람들 사이로 번져 갔습니다.

세상이 그렇게 어두워질 때, 보통이라면 지은 분이 손을 떼어 버릴 만도 합니다. "이만하면 됐다, 다 그만두자." 그런데 크라우니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크라우니는, 끈을 끊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많은 사람이 등을 돌려도, 크라우니는 늘 자기를 기억하는 한 사람을 찾아 곁에 섰습니다. 어두운 방에도 촛불 하나는 남겨 두듯이.

그 한 사람 중에 바우가 있었습니다.

바우는 별난 사람이었습니다. 다들 크라우니를 비웃을 때, 바우는 여전히 크라우니의 말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크라우니가 "큰비가 올 거다, 배를 지어라" 했을 때, 비 한 방울 없는 맑은 날인데도 바우는 배를 짓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이 손가락질했습니다. "마른 땅에 웬 배냐!" 바우는 묵묵히 지었습니다. 친구가 한 말이라서 믿은 겁니다.

정말로 큰비가 왔습니다. 세상을 덮을 만한 비였습니다. 그러나 바우와 그가 사랑한 것들은, 그 배 안에서 안전했습니다. 비가 그치고 하늘이 열렸을 때, 크라우니는 하늘에 빛깔 고운 띠 하나를 걸었습니다. 약속의 표시였습니다.

"다시는 이렇게 다 쓸어버리지 않으마. 나는 너희를 포기하지 않는다."

크라우니는 화를 내는 분이 아니라, 약속을 거는 분이었습니다.

세월이 더 흘러, 미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미르는 나그네였습니다. 정착할 땅도 없고, 늙도록 자식 하나 없었습니다. 미르에게는 내일이 없어 보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밤, 크라우니가 미르를 데리고 밖으로 나가 하늘을 가리켰습니다.

"저 별들이 보이니? 세어 봐라."

미르는 셀 수 없었습니다. 너무 많았으니까요.

"네 가족이 저 별처럼 많아질 거다. 온 세상이 너를 통해 복을 받을 거다."

자식 하나 없는 늙은 나그네에게, 별처럼 많은 가족이라니. 말이 안 되는 약속이었습니다. 그런데 미르는 그 약속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크라우니는, 그 말도 안 되는 약속을 정말로 지켰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알게 되는 게 있습니다.

크라우니는 사람이 잊어도 잊지 않고, 사람이 떠나도 따라오고, 가망 없어 보이는 곳에 약속을 심는 분이라는 것.

사람들은 자꾸 멀어졌지만, 크라우니는 한 번도 "이제 그만 사랑하자"고 한 적이 없습니다.

그 사랑이 다음 장에서, 우는 사람들의 소리를 듣게 됩니다.


이야기 · CHAPTER 04

사슬에서 건지심 — 우는 소리를 들은 분

미르의 가족은 정말로 별처럼 늘어났습니다. 한 무리의 백성이 될 만큼.

그런데 그 백성이, 어느 날 사슬에 묶였습니다.

힘센 나라가 그들을 붙잡아 종으로 부렸습니다. 매일 무거운 짐을 지우고, 채찍을 휘두르고, 쉬는 날도 주지 않았습니다. 백성은 등이 휘도록 일했고, 밤이면 울었습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울음이었습니다.

세상은 그들의 울음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종이 우는 소리 따위, 아무도 듣지 않았으니까요.

하지만 한 분이 듣고 있었습니다.

크라우니였습니다.

크라우니는 그 울음을 한 방울도 흘려듣지 않았습니다. 멀리 있는 것 같아도, 크라우니는 가장 낮은 데서 나는 가장 작은 울음을 듣는 분입니다. 그리고 크라우니는 듣기만 하는 분이 아니었습니다. 들으면, 움직이는 분이었습니다.

크라우니는 해온이라는 사람을 불렀습니다.

해온은 자기가 별것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말도 어눌하고, 내세울 것도 없었습니다. "제가 어떻게 그 큰일을 합니까?" 해온은 자꾸 뒤로 물러섰습니다. 그때 크라우니가 말했습니다.

"네가 하는 게 아니다. 내가 너와 함께 간다."

그 한마디에 해온은 일어섰습니다. 혼자가 아니라는 말, 함께 간다는 말 — 그 말이 사람을 일으킵니다.

해온은 사슬에 묶인 백성에게 가서 외쳤습니다. "크라우니가 너희 울음을 들었다! 이제 나가자!"

힘센 나라는 순순히 놓아주지 않았습니다. 백성을 뒤쫓았습니다. 백성은 도망쳤지만, 앞에는 큰 바다가 가로막혀 있었습니다. 뒤에는 군대, 앞에는 바다. 더는 갈 데가 없었습니다. 백성은 다시 울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서 끝이구나."

그날 밤, 크라우니가 바다를 갈랐습니다.

물이 양쪽으로 벽처럼 서고, 바다 한가운데 마른 길이 났습니다. 백성은 그 길을 걸어, 사슬의 땅을 빠져나왔습니다. 건너편에 닿아 뒤를 돌아본 사람들은, 그제야 알았습니다. 우리를 여기까지 데려온 건 우리 힘이 아니었구나.

자유로운 땅에 선 백성에게, 크라우니는 무거운 규칙을 잔뜩 안기지 않았습니다. 대신 아주 단순한 길을 주었습니다.

"크라우니를 사랑하고, 서로 사랑하며 살아라. 그게 잘 사는 길이다."

종으로 살 때는 채찍이 사람을 움직였습니다. 이제 자유인이 된 그들을 움직일 것은, 채찍이 아니라 사랑이어야 했습니다.

이 장에서 우리가 본 크라우니는 이런 분입니다.

가장 낮은 자리의 울음을 듣는 분. 듣고 가만있지 않고 직접 건지러 오는 분. 그리고 건져낸 사람에게 사슬 대신 사랑을 가르치는 분.

그런데 말입니다. 여기까지도 크라우니는 늘 '누군가를 통해서' 일했습니다. 바우를 통해, 미르를 통해, 해온을 통해. 사람들은 여전히 크라우니를 멀리서, 전해 들어서 알았습니다.

크라우니는 그게 못내 아쉬웠습니다.

전해 듣는 친구 말고, 직접 만나는 친구가 되고 싶었으니까요.

그래서 크라우니는, 누구도 상상 못 한 일을 하기로 합니다.


이야기 · CHAPTER 05

직접 오시다 — 별을 지은 분이, 아기가 되어

크라우니가 하기로 한 일은, 듣고 나면 한참 동안 말을 잃게 되는 일입니다.

크라우니는, 직접 사람이 되어 오기로 했습니다.

잠시 생각해 보세요. 별을 다 지은 분입니다. 바다를 가른 분입니다. 우는 백성의 소리를 먼 데서도 듣는 분입니다. 그런 분이라면, 올 때도 어마어마하게 올 거라고 다들 생각했습니다. 하늘이 갈라지고, 천둥이 울리고, 온 세상이 무서워서 엎드릴 만한 모습으로요.

그런데 크라우니는, 정반대를 골랐습니다.

크라우니는 가장 작은 모습으로 왔습니다. 갓 태어난 아기로요.

좋은 집안, 따뜻한 방도 아니었습니다. 사람들이 잘 가지 않는 허름하고 추운 자리에서, 가난한 여인 보미의 품에 안겨 태어났습니다. 처음 그를 보러 온 사람들도 높은 분들이 아니었습니다. 밤새 들에서 양을 치던, 손이 트고 고단한 일꾼들이었습니다.

별을 지은 분이, 이제는 누가 안아 주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아기가 되었습니다. 추우면 울고, 배고프면 보채고, 엄마 품을 찾아 고개를 묻는, 그렇게 작고 여린 아기.

왜 이렇게까지 했을까요?

친구가 되고 싶어서였습니다.

높은 자리에서 내려다보는 분은, 두려운 분은 될 수 있어도 곁에 앉는 친구는 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무서운 분 앞에서는 자꾸 숨게 되니까요 — 단과 리아가 그랬던 것처럼. 크라우니는 우리가 더는 숨지 않기를 바랐습니다. 그래서 무서울 구석이 하나도 없는 모습으로, 아기로 내려온 겁니다. 아기를 무서워하는 사람은 없으니까요.

여기서 꼭 붙잡아 둘 것이 있습니다.

이 아기는 '또 다른 크라우니'가 아닙니다. 세상을 지은 그 크라우니, 바다를 가른 그 크라우니와 같은 한 분입니다. 멀리 계시던 분이, 이번엔 안을 수 있을 만큼 가까이 — 숨소리가 들릴 만큼 가까이 — 온 것뿐입니다. 늘 같은 한 분, 크라우니입니다.

아기는 자랐습니다.

남들처럼 키가 크고, 손에는 일하느라 굳은살이 박였습니다. 배가 고팠고, 먼 길을 걸으면 발이 부르텄고, 친구들과 둘러앉아 밥을 먹을 땐 소리 내어 웃었습니다. 슬픈 일 앞에서는 눈물도 흘렸습니다. 별을 지은 분이, 굳은살과 눈물을 가진 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오랫동안 사람들은 궁금해했습니다. "크라우니는 도대체 어떤 분일까? 무슨 마음을 가졌을까?" 이제 그 답이, 길을 걷고 밥을 먹고 웃고 우는 한 사람이 되어, 사람들 사이에 서 있었습니다.

더는 멀리서 전해 들을 필요가 없었습니다. 손을 뻗으면 닿는 자리에, 크라우니가 있었으니까요.

그리고 이 친구가 가장 먼저 찾아간 사람들은 — 놀라지 마세요 — 세상에서 가장 환영받지 못하던 이들이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다음 장에서 하겠습니다.


이야기 · CHAPTER 06

가장 낮은 자리의 사랑 — 너를 친구라 부른다

사람이 되어 걷기 시작한 크라우니에게는, 한 가지 버릇이 있었습니다.

늘, 아무도 가까이하지 않는 사람에게 먼저 다가갔습니다.

바닷가에 돌이라는 어부가 있었습니다. 손이 거칠고 말투도 투박해서, 점잖은 사람들은 그를 어려워했습니다. 크라우니는 그 돌에게 먼저 갔습니다. "나랑 같이 다니자." 배운 것도 없고 가진 것도 없는 어부가, 그날 크라우니의 친구가 되었습니다.

마을에는 세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세이는 세금을 걷는 일을 했는데, 늘 정해진 것보다 더 걷어 제 주머니를 채웠습니다. 그래서 모두가 세이를 미워하고 피했습니다. 길에서 마주치면 다들 고개를 돌렸습니다.

그런 세이를, 크라우니가 똑바로 바라보며 이름을 불렀습니다.

"세이야. 오늘 너희 집에서 밥 먹자."

세이는 자기 귀를 의심했습니다. 다들 피하는 자기에게, 먼저 밥을 먹자고 한 사람은 처음이었으니까요. 그날 세이는 변했습니다. 더 걷은 돈을 다 돌려주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 주었습니다. 야단을 맞아서가 아닙니다. 누군가 처음으로 자기와 밥상에 마주 앉아 주어서였습니다.

나래라는 여인도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나래를 손가락질하며 가장자리로 밀어냈습니다. 아무도 나래의 손을 잡아 주지 않았습니다. 크라우니는 그 나래에게 다가가, 모두가 보는 앞에서 다정히 말했습니다. "괜찮다. 고개를 들어라." 밀려나던 사람이, 그날 사람대접을 받았습니다.

크라우니는 아픈 사람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했습니다. 다들 더럽다고 피하는 병자에게도 손수 손을 댔습니다. 아이들이 시끄럽다고 어른들이 쫓아내면, 크라우니가 막아섰습니다. "아이들을 내게 오게 둬라." 그리고 한 명 한 명 무릎에 앉히고 머리를 쓰다듬었습니다.

이상하지요. 가장 대단한 분이, 가장 낮은 사람들 사이에서 가장 편안해 보였습니다.

어느 날 크라우니가 친구들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이 책에서 가장 따뜻한 말 중 하나입니다.

"나는 너희를 종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너희를 친구라고 부른다."

그때까지 사람들은 크라우니를 무서운 주인쯤으로 여겼습니다. 잘 보여야 하고, 비위를 맞춰야 하는 분. 그런데 크라우니가 말합니다. "아니야. 너는 내 종이 아니야. 너는 내 친구야."

이것이 크라우니의 사랑이 어떤 것인지 보여 줍니다.

크라우니의 사랑은 잘난 사람만 골라 가는 사랑이 아닙니다. 미움받던 세이에게, 밀려나던 나래에게, 거친 돌에게, 아픈 사람에게, 시끄럽다고 쫓겨난 아이에게 — 먼저 가는 사랑입니다.

혹시 당신이, 자기는 사랑받기엔 부족하다고 생각한다면.

이 장을 한 번 더 읽어 주세요.

크라우니가 가장 먼저 찾아간 사람들이, 바로 그렇게 생각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이야기 · CHAPTER 07

끝까지 — 떠날 수 있었지만 머문 사랑

크라우니가 사람들 사이에서 사랑을 나눌수록, 그를 미워하는 이들도 늘었습니다.

높은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불편했습니다. 크라우니가 자꾸 낮은 사람 편을 들었으니까요. 미움받던 사람이 사랑받고, 밀려나던 사람이 고개를 드는 것이, 그들에게는 위험해 보였습니다. 자기들이 쥔 것을 빼앗길 것 같았던 겁니다. 그래서 그들은 크라우니를 없애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런데 가장 아픈 건, 그 일에 크라우니의 가까운 친구 하나가 끼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가린이었습니다.

가린은 오랫동안 크라우니와 함께 다닌 친구였습니다. 같은 밥상에서 밥을 먹고, 같은 길을 걷고, 같은 농담에 웃던 사이. 그런 가린이, 크라우니를 미워하는 사람들에게 그를 넘겼습니다. 믿었던 친구가 등을 돌리는 것 — 그건 어떤 매보다도 깊이 아픈 일입니다.

크라우니는 그 모든 걸 미리 알고 있었습니다. 가린이 무슨 일을 할지도, 그날 밤 무슨 일이 벌어질지도. 그러면서도 크라우니는 마지막 밤까지 가린과 같은 식탁에 앉아, 그에게도 빵을 떼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우리가 꼭 보아야 할 장면이 나옵니다.

크라우니는, 떠날 수 있었습니다.

별을 지은 분입니다. 바다를 가른 분입니다. 마음만 먹으면 그 자리를 단숨에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자기를 해치려는 사람들을 멈춰 세우는 것쯤, 그에게는 손바닥 뒤집는 일이었습니다. 도망치는 건 너무나 쉬운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크라우니는, 머물렀습니다.

왜였을까요?

기억하시나요. 아주 오래전, 단과 리아가 숨던 날 생긴 그 '거리'. 크라우니와 사람 사이에 벌어진 슬픈 간격 말입니다. 그날 이후로 크라우니는 줄곧 "어디 있니?" 하며 그 거리를 메워 왔습니다. 바우를 통해, 미르를 통해, 해온을 통해, 마침내 직접 친구가 되어서까지.

이제 그 거리를 완전히 메울 마지막 한 걸음이 남아 있었습니다.

그 걸음은, 가장 낮은 곳까지 내려가는 것이었습니다. 사람이 갈 수 있는 가장 아프고 가장 어두운 자리, 누구도 대신 가 주지 않는 그 자리까지, 크라우니가 친히 내려가는 것. 사랑하는 친구들이 그 자리에 혼자 떨어지지 않도록, 자기가 먼저 가서 바닥에 서 있어 주는 것.

크라우니는 도망 대신 그 길을 택했습니다.

떠나는 게 강한 게 아니라, 사랑할 때는 머무는 게 더 강한 것이라는 듯이.

그는 붙잡혔고, 모욕당했고, 끝내 가장 잔인한 자리에서 자기를 내주었습니다. 별을 지은 분이, 자기가 지은 사람들의 손에 죽었습니다. 이건 이 책에서 가장 견디기 힘든 장면입니다. 저도 가볍게 쓰고 싶지 않습니다. 천천히 읽어 주세요.

그런데 크라우니가, 그 아픈 자리에서 마지막으로 한 말이 있습니다.

자기를 못 박는 사람들을 내려다보며, 크라우니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들을 용서해 주세요. 저들은 자기가 무슨 일을 하는지 모릅니다."

미움이 그를 둘러싼 그 한가운데서도, 크라우니가 끝까지 손에서 놓지 않은 것은 사랑이었습니다.

언젠가 크라우니는 친구들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이 책에서 가장 깊은 말일지도 모릅니다.

"친구를 위해 자기 목숨을 내주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

그날, 크라우니는 그 말을 입으로만 남기지 않았습니다. 몸으로, 끝까지 — 정말 끝까지 — 그 말을 살아 냈습니다.

세상이 보기엔 그것으로 끝이었습니다. 크라우니는 죽었고, 친구들은 뿔뿔이 흩어졌고, 온 세상이 캄캄해졌습니다.

하지만 사랑은, 그렇게 끝나도록 두는 분이 아니었습니다.

사흘 뒤, 이야기는 누구도 예상 못 한 쪽으로 돌아섭니다.


이야기 · CHAPTER 08

다시, 그리고 안으로 — 이제 네 곁에 늘

캄캄했던 사흘이 지났습니다.

흩어진 친구들은 슬픔에 잠겨 있었습니다. 돌도, 나래도, 세이도, 다들 고개를 떨구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따르던 분이 죽었구나. 다 끝났구나."

그런데 그 아침, 믿을 수 없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크라우니가, 다시 살아났다는 것입니다.

처음엔 아무도 믿지 않았습니다. 죽은 사람이 어떻게 돌아옵니까. 그런데 정말로, 크라우니가 친구들 앞에 다시 섰습니다. 손에는 그날의 상처 자국이 그대로 있었지만, 분명히 살아 있는 채로, 전처럼 따뜻하게 웃으며.

크라우니는 죽음보다 컸습니다.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입니다. 죽음이 어떻게 생명을 지은 분을 가두겠습니까. 가장 낮은 자리까지 내려갔던 크라우니가, 그 자리를 뚫고 다시 올라온 것입니다. 단과 리아 때부터 벌어졌던 그 슬픈 거리가, 마침내 메워졌습니다.

자, 이제 크라우니가 무엇을 할지 보세요. 이게 정말 크라우니다운 선택입니다.

다시 살아난 크라우니는, 한 자리에 머물며 "나를 보러 오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만약 그랬다면, 그를 만나려면 먼 길을 와야 했을 겁니다. 가까운 사람만 만날 수 있었을 겁니다. 먼 나라 사람, 먼 훗날의 사람 — 이를테면 지금 이 책을 읽는 당신은, 영영 만날 수 없었을 겁니다.

크라우니는 그걸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크라우니는, 더 가까운 길을 택했습니다.

이제 크라우니는 모든 사람의 곁에, 그리고 안에 머물기로 했습니다. 눈에 보이는 한 사람으로서가 아니라, 어디에나 함께 있을 수 있는 분으로.

이것도 '또 다른 크라우니'가 아닙니다. 세상을 지은 그 크라우니, 친구로 와서 십자가까지 갔던 그 크라우니와 같은 한 분입니다. 다만 이번엔, 손이 닿는 거리보다 더 가까이 — 당신의 숨결만큼 가까이 — 머물기로 한 것뿐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어느 나라에 살든, 어느 시대에 태어났든 상관없습니다.

크라우니는 가장 멀리 있는 사람에게도, 가장 외로운 밤에도, 곁에 있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외딴 방에서 혼자 우는 사람 곁에도, 사슬 같은 하루를 사는 사람 곁에도, 자기는 사랑받을 자격이 없다고 여기는 사람 곁에도.

처음에 크라우니는 저녁마다 단과 리아와 '나란히' 걷고 싶어 했습니다. 기억하시지요.

이제 크라우니는, 나란히 걷는 것보다 더 가까워졌습니다.

당신이 어디에 있든, 크라우니는 늘 곁에 있겠다고 약속한 친구가 되었습니다.

남은 건 한 가지입니다.

그 친구가 내미는 손을, 당신이 잡을지 말지.

마지막 장에서, 그 손이 당신에게 옵니다.


이야기 · CHAPTER 09

열린 문 — 비워 둔 자리는 너를 위한 것

이제 이야기의 끝에 왔습니다.

처음을 기억하시나요. 텅 빈 곳에 한 분이 계셨고, 사랑이 넘쳐서 세상을 짓고, 친구가 갖고 싶어서 사람을 지었습니다. 저녁마다 나란히 걷던 그 시간이, 크라우니가 가장 좋아하던 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친구들이 숨었고, 거리가 생겼고, 세상은 어두워졌습니다.

이 책의 전부는, 그 거리를 메우려는 한 분의 이야기였습니다.

"어디 있니?" 하고 찾던 목소리. 포기하지 않고 약속을 걸던 마음. 우는 소리를 듣고 직접 건지러 오던 발걸음. 별을 지은 분이 아기가 되어 곁에 앉던 일. 미움받던 사람에게 먼저 가던 버릇. 떠날 수 있었지만 끝까지 머물던 사랑. 죽음을 뚫고 다시 와, 이제 당신 곁에 늘 있겠다던 약속.

이 모든 게, 벌어진 거리를 메우려는 한 분의 마음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거리는, 이제 열려 있습니다.

크라우니는 새 세상을 짓고 있습니다. 더는 아무도 숨지 않아도 되는 곳. 사슬도, 눈물도, 밀려남도 없는 곳. 돌과 세이와 나래가, 한때 미움받고 밀려나던 그 사람들이, 환한 식탁에 둘러앉아 웃는 곳.

그 식탁에는, 자리가 하나 비어 있습니다.

크라우니가 일부러 비워 둔 자리입니다.

그 자리에는 이름표가 붙어 있는데, 거기 적힌 이름은 — 당신의 이름입니다.

크라우니는 그 자리를 아무에게도 주지 않고,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당신이 어떤 사람이었든, 무엇을 했든, 얼마나 멀리 있든 상관없습니다. 미움받던 세이도, 밀려나던 나래도, 등 돌렸던 사람조차 — 크라우니는 끝까지 자리를 비워 두는 분이니까요.

크라우니는 문을 두드리는 분이지, 문을 부수는 분이 아닙니다. 그 문의 손잡이는, 안쪽 — 당신 쪽에 달려 있습니다. 크라우니는 밖에서, 서두르지 않고, 두드리며 기다립니다.

언제까지냐고요?

끝까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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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이것은 비유입니다.
이 책의 '크라우니'는 어느 한 나라, 어느 한 종교의 이름이 아닙니다. 모든 것을 지었고, 가장 낮은 자리까지 내려와, 끝까지 당신을 사랑하는 한 분을 —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는 친구의 말로 그려 본 것입니다.
등장하는 사람들의 이름을 모두 새로 지은 것도 그래서입니다. 이 이야기가 어느 한 편의 것이 아니라, 당신의 것이기를 바랐습니다.
크라우니가 비워 둔 그 자리는, 정말로 당신을 위한 자리입니다.
그 사랑이 이야기 안에만 머물지 않고, 당신의 진짜 삶에서도 친구가 되기를 — 그 마음으로 이 책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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